장용기 "겸손과 포용, 실사구시 정신을 갖자"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 옳다고 강변하는 이 시대 정치,경제,사회,교육,언론계는 역지사지(易地思之)정신을 되새겨야...

장용기 목포MBC보도위원 | 입력 : 2020/03/10 [09:49]

 

 

장용기 "겸손과 포용, 실사구시 정신을 갖자"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 옳다고 강변하는 이 시대 정치,경제,사회,교육,언론계는 역지사지(易地思之)정신을 되새겨야...

 

 


▲ 장용기 목포MBC보도국 보도위원(사회복지학 박사)  © 목포뉴스

 

장용기

목포MBC보도국 보도위원

고구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사회복지학박사)

 

토정 이지함 사회복지사상연구(2019)

목포문화원 자문위원(2019~)

전남도교육청 교육참여위원(2010~) 


 

"우리의 일상을 빼앗아간 코로나19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지만 건강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고 극복합시다. "

 

유교 성리학의 창시자인 중국의 송나라 주자(주희 1130~1200 )선생이 '교조적인 조선 성리학' 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결백을 담은 억울한 하소연이 갑자기 대한민국에 전달됐다면 여러분 어떻겠습니까?

 

흔히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학술과 사상 종교적으로 교조적 진보와 보수, 교조적 공산주의자. 교조적 조선성리학 등의 용어로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 맞고 옳다고 믿는 사람이나 단체, 사상 앞에 붙습니다.

 

말 그대로 교조(敎條) '종교적 신조' 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고 따른다는 맹목적 추종의 뜻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도그마' 라는 단어이더군요.

 

조선의 중기 이후 유학이 다른 사상이나 학문을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교조적 독단적으로 흐르게 된 데는 주자가 만든 성리학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삼강오륜과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을 따지는 유교의 비공식적 문화유산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며 공자가 죽어야 또는 주자가 죽어야 나라가 반듯하게 선다는 반 유교적인 말도 거론되고 있지요.

 

16세기 조선 중기 토정 이지함이 포천군수 재임 때 '백성의 가난 구제와 조선의 국부를 위해 광업과 수산업 상공업 해외무역을 하자' 는 상소문을 선조 임금에게 올리자 당시 유학자인 양반 사대부 관료들은 군주인 임금 앞에 상스럽게 대의(大義)가 아닌 소인배들이나 추구하는 리()를 말했다며 비난했습니다.

 

당시 유교 성리학으로 무장된 기득권 지배세력인 조선의 양반과 사대부 관료 등 이른바 선비 군자는 대의명분(大義名分)만 말할 뿐 이익과 손해는 말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며 소인들의 짓이라고 비하했습니다.

 

그러자 토정 이지함은 당신 유학자들이 떠받드는 공자의 제자 자사(子思)도 장사를 했고 성리학을 창시한 주자도 조적(쌀을 팔고 사는 행위)을 했다며 성인군자도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 이()를 행하는 것은 바른 도리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주자 선생은 쌀장사를 했을까요? 맞습니다. 자신의 돈벌이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백성들의 가난구제를 위해 사창(社倉)을 개설해 일종의 쌀 등 곡식을 사고 판 것은 맞습니다.

 

주자선생은 43경의 학문연구에 정진한 건 맞으나 자신은 백성의 가난 구제에 힘쓴 실사구시 현실주의자로 살았는데, 제자들이 엮은 성리학이 조선의 압록강을 건너면서 사회 신분질서를 강조한 사농공상의 대의명분에 치우친 수직적 차별학이 됐다고 몹시 억울해 합니다.

 

특히 주자가 숨진 중국 송말 명초에는 성리학의 지나친 형식과 이상주의를 극복하는 양명학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천을 주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조선의 정도전, 이황 등은 양명학을 사이비학문이라고 비판했고 16세기 조선중기 이후에는 아예 성리학 아닌 모든 학문과 사상은 유교를 어지럽히는 적이라며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주자의 학문은 성즉리(性卽理)를 추구했지만 실제적인 삶은 요즘으로 보면 시장을 중시하며 백성의 자립을 강조한 시장 자유주의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주자가 송나라 지방관리 시절 마을단위 사창(社倉)을 처음으로 운영한 사실은 잘 모르시지요. 그는 관청으로 부터 곡식을 빌려 사창을 만든 뒤 백성들에게 나눠준 뒤 이자를 받는 방식으로 3년 만에 관곡을 갚고 나머지 3년 뒤 원곡의 3배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관청이 운영에 개입하지 않고 마을 민간 중심의 운영을 통해 종자곡을 빌린 백성들에게 시혜가 아닌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약속과 신뢰의 중요성을 심어주며 근면과 자립을 강조했습니다.

 

주자는 사창의 운영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마을을 방문할 때도 반드시 다른 관료 등을 거느리지 않고 자신의 먹을 것 등을 따로 챙겨갔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논어 공자 맹자의 성리학을 창시한 주자선생이 백성을 위한 현장 중심의 삶을 살았을 거라고 또 이런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배웠습니까?

 

공자왈 맹자 왈 ,군자와 소인, 삼강오륜의 신분질서만 탁상에서 유학적 삶만 강조한 것으로 알았던 주자 선생에 대한 선입견의 대 반전입니다.

 

그러면 조선의 사대부 성리학자들이 이걸 몰랐을까요? 양반 상인인 토정 선생도 알고 있는데 아마 알면서도 자신들의 지배와 이권에 유리한 것만 시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바로 유교의 수직적 사회 신분질서를 요구하는 삼강오륜을 앞세우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숨기는 지식 정보의 기득권 독점이었습니다.

 

사실 사농공상도 중국에서는 신분이 아닌 직업을 지칭하고 만다린이라는 중국 명나라 유학 귀족들은 관리가 되지 않으면 장사에 종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노비제는 명나라가 건국되기 훨씬 이전. 유교 성리학이 만들어진 송나라때 황제가 공식적으로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그렇게 중국의 역사적 사례와 법제를 거론하며 왕에게 따졌던 당시 유학관료들은 왜 이 같은 사실에는 침묵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조선 시대를 약한 왕권에 강한 관료제 국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몇 년 전 교육부 한 고위 관료가 술김에 내뱉었다는 '국민은 개돼지' 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그러나 조선 때도 태종이나 세조 처럼 관료신권을 제압한 강한 왕이 있었는데 모두 무력의 소유자네요ᆢ. 우리 현대사에도 그런 대통령이 있었지요

 

박정희전두환 두 대통령.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으신 분들 . 역사적 평가는 우선 유보하고 대통령 권한 대단 했지요.

 

기왕 내친 김에 중국의 제도를 본받은 상평창에 대해서도 한번 말해보지요

상평창은 조정의 물가 조정 역할로 당시 생활의 기준이 됐던 쌀 풍작에 비싸게 샤들이고 흉년에 싸게 방출한다는 내용으로 백성의 생활안정을 위한 것으로 배웠지요.

 

중국에서는 이 제도가 농지를 많이 소유한 부농들을 위한 것으로 계속된 풍년에 쌀값 폭락을 방지하기 위해 사들이고 그것도 화폐경제를 단위로 했기에 물가 조절과 함께 결과적으로 하층민들에게도 도움이 됐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흉년에 쌀을 싸게 방출해 백성을 구제하는 덕치의 제도로 접근했는데 쌀이 얼마나 비축돼 있는지도 파악할 길이 없고 화폐가 아닌 베필로 쌀을 팔고 사는 교환 기준을 정했으나 품질 낮은 베는 아예 사용도 못해 사실상 조선의 상평창은 이름과 달리 물가조절 역할을 못했다는 겁니다.

 

문화나 제도는 모두 그 나라의 풍토와 사회 경제 등 특수성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조선은 그 제도를 우리형편에 맞춰서 도입해야 하는데 제도가 좋다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국제 검색기능을 갖춘 인터넷이 발달해 표절 도입은 덜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학자나 공직자들도 그렇지요. 외국의 제도나 학설을 선진국의 새로운 흐름이라며 무조건 소개 정책에 도입한 뒤 정착이 안되면 정치 경제 조건이나 국민 의식이 성숙되지 않아 그렇다고요.

 

그렇다면 이걸 사전에 고지하고 전제를 해야지요. 아니면 시범적으로 실사구시를 해보든지. 현장을 무시한 얼치기 전문가들은 어쩌다 잘되면 자신의 공로이고 안되면 국민 탓 풍토 탓 입니다.

 

현대판 사대주의입니다. 물론 사대는 생존에도 필요하지만 주체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외국어에 의존하는 사대인데요. 간단한 스케치 그림을 뜻하는 미술의 데생과 소묘가 그 대표적 입니다. 소묘라는 말로 쓰이다가 70년대 중반인가 프랑스 유학자가 데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소묘는 촌스런 단어로 전락했습니다.

 

최근에도 요리사와 주방장이 쉐프로 요리법과 조리법이 레시피로 그리고 쉐프나 레시피를 모르면 상대를 무시하거나 촌스런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사대주의 용어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조선시대 주막이라는 단어에서 일제 강점기에는 여관과 여인숙으로, 또 미 군정기에는 모텔과 호텔로 이름이 바뀌는 대한민국의 언어 변신술과 여전히 호텔을 주점으로 사용하는 중국 사회를 보면 착잡한 심정이 듭니다. 주막과 여관 여인숙은 원래 중국에서 온 한자말이라고요 ? 맞습니다.

 

​그런데 수천년 써온 한자말을 아직도 버려야 될 중국의 외래어로 보십니까? 저는 이제 한자말을 귀화어로 보고 의무적 장려는 않지만 익혀야 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한중일 삼국은 정치외교경제 갈등은 있지만 한자 문화권으로 나름 통하는 강점도 살려야 합니다.

 

이야기가 다른 길로 샜지만 오늘은 완고하고 불통의 교조적 조선 성리학을 창시한 원조로 내몰렸던 1100년대 인물 주자(주희)선생이 조선 중기 토정 이지함 선생을 통해 자신은 조선 성리학의 교조적 정신과는 무관하고 정말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실었습니다.

 

이 글의 본질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 옳다고 강변하는 이 시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언론에게도 "자신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겸손과 포용 . 중도실용과 실사구시 정신을 갖자"입니다.

 

코로나19 극복에 각계 시민의 힘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칭찬과 배려 긍정 마인드로 몸 건강과 함께 건강한 사회 만듭시다.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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