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훈 함평문화원장, 1980 함평군민 궐기대회 왜곡 논란 해소...군민 현혹 세력 추방 여론-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종합보고서, 1980년 5월 함평군민궐기대회 전남합동수사본부 훈방조치 국가기록원의 자료가 사실로 나타나
김창훈 함평문화원장, 1980 함평군민 궐기대회 왜곡 논란 해소...군민 현혹 세력 추방 여론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종합보고서, 1980년 5월 함평군민궐기대회 전남합동수사본부 훈방조치 국가기록원의 자료가 사실로 나타나 -행사주도 김창훈 함평문화원장, 기자회견 갖고 역사적 사실 분명히 밝혀...당시 행사 동참 88세 정찬동 작가 참석하여 김창훈원장 격려 -권력과 자본에 빌붙어 진실도 거짓으로 둔갑시켜 선량한 군민 현혹시키는 몰지각한 자들 추방 여론도 높아
전두환 독재 기간인 지난 1980년 5월 22일 함평공원에서 개최되었던 5.18 광주의거 관련 함평군민궐기대회의 진실한 역사가 확실히 밝혀졌다.
1980년 5월 함평군민궐기대회를 주도한 김창훈 함평문화원장에 대한 행사주도 사실과 당시 행사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입건되어 곤욕을 치르다 전남합동수사본부에 의하여 훈방조치 되었다는 국가기록원의 자료가 사실로 나타났다.
그동안 일부 억측 세력으로부터 5.18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갖은 비난과 모욕을 받아왔는데 당시 행사를 김창훈원장이 주도했다는 내용이 국가기관인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종합보고서에서 명명백백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기록원의 자료에서도 김창훈원장이 함평공원궐기대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하고 유인물 제작 배포를 했다는 이유로 입건 체포되어 곤욕을 치렀으나 훈방조치 되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남으로 갖은 억측으로 괴롭힘을 당하며 5.18 왜곡자라는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감내해 왔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보고서에는 “1980년 5월 22일 11시경 함평 장날 김창훈 등이 주도하여 200~300여명의 군민이 참여하는 시민궐기대회가 함평공원에서 열렸다. ‘전두환 물러가라’등의 구호가 나왔다. 궐기대회를 마친 시민들은 구호를 외치며 시내로 들어왔다”는 내용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김창훈원장 스스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진실이라며 설화집 등에 그 사실들을 게재하여 군민들께 알려왔으나 당시 궐기대회에 참가하지도 않은 일부 세력이 의혹을 제기하며 김창훈원장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고 계속 주장해 왔다.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1980년 5월의 진실을 확실히 밝힌 김창훈원장은 “그동안 많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참고 살아왔지요. 거짓말 할 것이 따로 있지 어찌 역사적 사실, 그것도 5.18의 역사를 왜곡하겠습니까? 라고 분개했다.
김창훈원장은 “당시 저와 김하균읍장님은 정부 보상신청도 거부한 사람입니다. 5.18희생자분들께 너무 부끄럽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5.18 공로자회 가입을 하지 않은 이유도 너무 초라한 5.18공로자가 되기 싫어서였다. ”면서 “그러나 이제는 떳떳이 함평의 5월을 이야기할랍니다. 저의 억울함을 풀어준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며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언론인들에게 당당히 말했다.
한편 김창훈원장측은 이와 관련 허위사실 유포 언론 등에 대해 민형사상 고소 대응을 천명했는데 지역사회에서 권력과 자본에 빌붙어 진실도 거짓으로 둔갑시켜 선량한 군민들을 현혹시키는 몰지각한 자들은 함평에서 추방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1980년 5월 22일 함평공원에서 개최된 군민궐기대회 주도한 김 창 훈 함평문화원장 기 자 회 견 문
존경하는 함평군민여러분, 바쁘신 일정 중에도 자리를 함께하신 언론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먼저 함평고을의 함평문화진흥육성을 위하여 설립•운영되는 함평문화원의 원장으로서 군민여러분과 언론인여러분께 저의 부덕의 소치로 인하여 이처럼 기자회견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점에 대하여 참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제 나이 올해 75세입니다. 이곳 함평고을에서 나서 자랐고 나름의 애향심으로 내 고향 함평을 위해 미력이나마 헌신봉사해 왔음은 지역 여러 어르신들과 선•후배님들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지난 2016년 4월 21일 제11대 함평문화원장으로 취임하여 700여 문화가족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 13대 문화원장으로 일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련과 곤란 속에서도 꿋꿋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지난 2021년 제41회 함평군 5•18기념식에서 일어난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 소위 모인의 측근들로부터 갖은 모략과 비난으로 인하여 함평문화원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으므로 저는 집을 담보하고 빚을 내어 문화원을 운영할 지경까지도 어려움을 감내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함평문화원은 함평군의 부당한 보조금 교부취소 결정에 따라 취소 결정을 요하는 행정소송을 함평군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곧 2심 선고 결정이 내려질 것임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사실 문화원이 오늘의 어려움까지 온 것은 군수선거에 개입했다는 보복성 처분이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오늘의 어려움에 직면한 모든 일들은 모두가 저의 부족함과 부덕함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없고, 힘이없고, 능력이 부족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했던 일들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처럼 기자회견을 갖게 된 사유는 아주 못된 생각을 가진 모인이 무지막지한 거짓을 주장하여 확대 재생산하면서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여 선량한 군민들을 현혹시키고 자신들만이 절대 선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세력의 준동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어서 이처럼 기자회견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함평군민 여러분께 분명히 알리고자 해서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절대 왜곡되어서는 안됩니다.
첫째, 저와 관련한 1980년 5월 22일 함평공원에서 개최된 군민궐기대회 관련 사항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그들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설화집에 나와 있는 내용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날 행사는 행사 하루 전인 5월 21일 트럭에 탑승하여 광주에서 온 학생들의 “광주시민을 살려 주십시오” “전두환은 물러가라” 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모습을 지켜본 일부 군민들의 아픈 심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날 그 모습을 목격한 함평읍 거주 일부 청년들(24명추정)이 5월 21일 저녁(이날은 석가탄신일이었음) 자연스럽게 함평광인중학교 숙직실에 모여들었고 내일(22일) 광주와 관련한 함평군민궐기대회를 개최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계획된 행사입니다.
하루가 지난 22일(함평장날) 행사를 위해 함께 하기로 했던 사람들 중 김창훈, 모효남, 김상석 등 5~6명만이 약속된 화성다방에 모였고, 이 자리에서 행사를 준비하던 중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걸어서 함평까지 온 (고)김철수씨의 현장 증언을 듣기로 했습니다.
결의문을 만들고 행동구호 등을 마련했지만 막상 궐기대회 개최를 알릴 마땅한 방법이 없어 김하균 읍장님을 찾아 뵙고 읍사무소에 설치된 방송시설 사용을 간곡히 요구하여 허락을 받아 사용했습니다. 그때 그곳에 함께 계시던 정찬동씨의 설득으로 읍장님께서는 행사 말미 만세삼창까지 해주셨습니다.
수백명의 군민이 참여한 가운데 김창훈의 주도로 행사개최 취지설명 고,김철수씨의 광주현장 현황보고, 모효남씨의 광주의거(당시는 광주사태라 하였음)를 조속한 시일내에 민의에 의해 해결하라는 결의문 낭독, 김상석씨의 유인물 인쇄 배포, 김하균 읍장의 만세삼창 후 “전두환 물러나라” “계엄령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제창하고 그날의 궐기대회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 참석자 일부는 “전두환 물러나라” “계엄령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공원을 내려가 읍시가지를 행진했습니다.
그런데 함평의 5월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억지주장하는 일부세력은 당시의 함평공원궐기대회는 군수와 경찰서장 등이 공모한 ‘관’이 주도한 집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함평공원에 1996년부터 존치되어 왔던 5•18사적지까지 철폐하였습니다.
또한 관내 5•18단체 등을 동원하여 함평 5월의 함평공원궐기대회는 광주5•18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어찌 광주 5•18과 관계없는 궐기대회가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둘째, 그들은 김창훈 문화원장을 갖은 모략과 비방으로 흠집을 내면서 함평의 내일을 이끌어갈 이남오 군수 당선인이 위촉한 인수위원직을 당장 사퇴시키라고 하며 5•18단체 회원들이 성명서를 냈다고 윽박지르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저는 분명한 저의 입장을 밝힙니다.
※1980년 당시 함평공원궐기대회를 주도한 사람은 나 김창훈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합니다. (국가기록원 기록/ 1980년 7월 22일자 합수부 훈방자 명단에 김창훈 기록.)
※또한 1980년 함평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살펴 정리한 해남 등 전남지역 피해 부분에서 함평의 경우를 기술한 기록에 따르면, 1980년 5월 22일 함평 공원에서 궐기대회가 열렸고 김창훈이 주도했으며 ‘전두환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나왔다는 분명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국가기관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Ⅱ-768쪽 상단 함평관련 기록)
이처럼 역사적 사실들이 명백한데도 자신들만의 억지 주장을 내세우면서 심지어는 변화를 갈망하며 새로운 함평 건설을 내세우고 일하는 이남오 군수까지도 겁박하며 나의 인수위원 임명을 취소하라고 합니다.
존경하는 함평군민 여러분, 함께하신 언론인 여러분, 모든 역사는 당연한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1980년대를 사셨던 분들이라면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교통이 두절 되고 모든 매스컴이 단절된 상태에서 경찰서장을 비롯한 모든 경찰들은 시위 진압의 명분으로 광주에 차출된 함평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나승포 군수가 현재 생존해 계시니 그분께 연락하여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을 여쭈어보면 알 수 있었을 사안이었음에도 “5•18 함평공원궐기대회가 경찰서장, 군수의 지시로 인한 ‘관’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분명히 말하건데 그날의 함평공원궐기대회는 순수한 ‘민’주도로 이루어진 함평군민의 행사였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 당시 김하균읍장께서는 이 상황을 군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하시며 읍사무소 방송시설을 사용하게 하셨고 궐기대회에도 참석하셨으며 말미에는 두려움에 떠시면서도 ‘만세 삼창’을 하셨습니다. 이일은 그 당시에 새마을지도자이셨던 정찬동 어르신이 지금 살아계셔서 증언하고 계십니다.
군민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저의 주장은 분명한 역사적 기록에 의한 확실한 주장입니다. 혹여 저의 사실 증언에 대한 다른 입장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이의를 제기하여 물어봐 주십시오. 저는 당당히 답변드리겠습니다. 제 자신 역사와 선열들께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이 시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 6. 18 함평문화원장 김 창 훈 [공지] 지난 2006년부터 20여년간 최대 2만부를 발행하고 있는 주간 영광뉴스(신안신문)과 최대 5만부를 발행하고 있는 폭로닷컴은 목포시를 비롯 나주시, 화순군, 담양군, 장성군, 영광군, 무안군, 함평군, 신안군, 영암군, 해남군, 진도군 등지에 배포된다. 주요 배포처는 도청, 전남도의회. 도경찰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비롯 각 시군청사, 법원, 검찰, 읍면동사무소, 경로당 등 공공 기관과 농수축협, 터미널, 병원, 은행 등 다중 이용 시설과 단체 등이다. *폭로닷컴 5개 언론 계열사: 신안신문/폭로닷컴/목포뉴스/영광뉴스(주간)/폭로닷컴(주간) /영광뉴스(신안신문) http://sanews.co.kr/ /목포뉴스 http://www.mokpo.best/ /폭로닷컴 http://www.pokr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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